아무것도 모르겠다.
퇴사 이후, 생각보다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외할머니 생신겸 2박 3일동안 부산에 다녀왔고, 어떤 이유에선지 ‘돈을 많이 벌어야 겠다.’, ‘나와 닮은 아들을 기를 수 있는 가장이 되어야겠다.‘라는 다짐을 잔뜩 하게 되었다.
지금의 불안함을 기만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지난 일년 간 회사생활의 주 목적이 오직 돈이었다면, 나는 그 회사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처받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경험, 충격받지 않을 만큼의 입문과, 20살 즈음부터의 오랜 내 습관, 혹여나 위로받을 수 있는 다른 어떤 것이 남아있지않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안해봐서 그래.‘라는 거들먹거림에 설득력있게 항변할 근거를 만들고 싶었던 것도 컸다. 이상하지만 난 그런 식으로 나의 생존력을 확인해 왔던 것 같기도 하다. ‘니가 말하는 거 있잖아? 나도 다 해봤어.‘라고 나도 거들먹거리면서.
확실히 새로운 경험들은 나를 강하게 만들기도 했고, 긍정적인 결과들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 역시 그랬기에 유달리 실망하거나 기뻐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심란했다. ‘나 정말 다 해봤어.’ 라고 거들먹거려 보아도 체면이 설 곳이 없었다.
많은 것들을 함께하길 바라는 좋은 관계들이 생겼고, 구체적으로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쌓았지만, 어쩐지 더 불안해 다 뿌리치고 도망가고 싶었다. 없어져 버리고 싶었다.
분명히 나쁠 것이 없었음에도 여전히 불안한 것은, 사회생활에 기대했던 - 늘 값싸다고 표현하곤 했던 - 위로 역시 무의미함을 결국에 마주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에 있어서 사회생활은 내게 남은 마지막 카드였다.
몇 번의 결정적인 실패로 나는 완전히 처음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려운 진실, 가슴을 벅차게 채우는 그것이 아니고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지난 시간 나를 채워주었던 것들은 모두 내 손을 떠났고, 다시 만나게 될 날까지 무한히 고독하게 버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정말 모든 것이 떠났구나.‘하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바라보기 싫어서, 바라볼 수 없었기에 불안했던 것이다. 놓아두고 잊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손에 쥐고 있는 건 진작부터 없었다. 정말 모두 떠났다.
정말 소중했던 것. 정말 사랑했던 것. 나에게 가장 큰 의미였던 것.
지하철에서 나와 집으로 오는 길, 떠났다고 여기는 그것들이 그렇게나 내게 소중했던 것이었는지 돌이켰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런 내 마음을 한번이라도 진실되게 전한적이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생각을 하고, 말을 다듬고, 부족한 기억력에 문장을 놓치지 않으려 긴장하다, 버스에 올라 노트에 적기 시작하자 최선을 다했던 순간들이 풀린 긴장사이로 비집어 들어왔다.
이제는 명확히 기억할 수도 없는 시간이 지났고, 그간 몇 번의 만남으로 그들은 더더욱이 많은 것을 지웠음을 분명히 확인했건만, 의심하고 있는 것은 전하지 못한 만큼의 진심이 여전히 내 몫으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 아무튼, 아무튼 떠났다. 내 앞에 남은 아득한 고독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택해야 한다. 얼마나 될지 모를 시간을 버텨야 하고,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 내게 필요한 의식주와 잠깐을 위로해줄 취미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돈을 벌어야 한다. 일을 해야 한다.
2박 3일 동안 기차의, 부산의, 또 서울의 아가들을 볼 때마다 흠뻑 웃었다. 이모가 그녀의 딸과 드디어 대화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를 닮은 아들과 대화하는 것을 생각했다. 생존하고 책임질 수 있는 가장이 될 수 있을까.
긴 고독이 앞에 보이고, 장막을 걷고 나타날 진심을 잠깐 기대한다. ‘이거 혹시 정말 마지막 남은 기대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친다.
글을 다 쓴 것 같은데 여전히 이 글 만큼이나 혼란스럽다. 연결되는 문장이 서로 다른 것들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