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nch-Drunk Love> 내면의 평화

<Her> 를 보려고 했지만, 왠지 그 영화만큼은 평온한 마음으로 보고싶었기에 예전에 구해둔 영화들을 뒤적거렸다. 세이무어 호프만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에, 그가 나왔던 영화 중 수작이라 불리우는 것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 중에 언젠가 사람들에게 여러번 추천을 받았던 <Punch-Drunk Love> 를 보았다.

짧은 러닝타임이 아니었다면 답답해서 죽을 뻔 했다. ‘이런 미친 영화, 이런 미친X, 아씨 이런 미친X’ 을 영화 내내 되뇌였다.

총 한시간 반의 러닝타임의 3분 2동안 주인공의 정신병적인 불안함이 묘사되는데,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주인공의 자격지심과 미숙함, 그리고 그런 그를 가만히 두지않는 주위의 풍경에 나도 덩달아 정신병이 걸릴 것 같았다.

영화를 관조하지 못했던 것은 주인공의 모습 속에서 나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캐릭터와 상황이 극단적어서 ‘왜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생각을 했지만, 내 삶 속 어떤 장면 역시 그만큼 극적이기도 했다.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가족 구성원들 - 영화 속에서는 똘똘뭉친 7명의 누이들이 되겠다 - 은 우리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결코 우리를 어른으로 받아주지 않는다. 어렸을 때의 실수나, 귀저기를 차고다닐 적의 민망한 이야기들을 추억인 척 늘어놓곤 하는데, 보통 그런 ‘공작’들은 가족의 대화를 가장한 공격일 때가 많다. 스스로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철저히 준비된 권력싸움이며, 그렇기에 가히 ‘공작’이라 불리울만 하다.

영화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인정받은 인물이다. 엉망이긴해도 자신의 사업을 하고 있으며, 부하직원들의 태도를 보았을 때에 인격적으로도 어느정도 괜찮은 상사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베리 이건 - 주인공 - 의 누이들은 돌아가며 그의 직장에 전화를 하고 찾아오며 사장으로서의 그의 위신과 체면을 짓밟고, 가족이 모인 날에는 그들의 남편이 있는 상황에서조차 그를 조롱하고 못났던 옛날을 들추어 낸다. 성인 남성으로서의 그를 조금이라도 배려하질 않는다. 끊임 없이 다 커버린 그를 어렸을 적의 바보멍청이로 만들려 한다. 그런 가족은 억압이며, 정치이다. 감당할 수 없이 커버린 다음 세대에 대한 자격지심의 표출이다. 밖에선 착한 얼굴을 한 가부장이 집에와 아내를 구타하는 모습과 아주 닮았다.

‘내’가 건강하다면 그런 공작들은 웃어넘기면 그만이다. 그러나 내가 ‘약할 때’나, 혹은 내가 ‘약한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약한 사람’이라는 말이 ‘착한 사람’이라는 말과 동일한 선상에서 쓰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공격할 준비를 하지 못하는 ‘착한 사람’인 주인공은 악랄한 그들의 공작 앞에 더욱 더 못난 모습을 드러낼 수 밖에 없게된다. 아, 이 뭣같은 굴레. 더 사랑하는 ‘착한 사람’은 정치 속에서 피해자가 된다.

영화는 남은 삼십분동안 시원하게 모든 것을 폭발시킨다. 폭력과 거친 섹스로 주인공의 불안이 해소되며 끝이난다. 뭐 그랬던 것 같다.

요즘 몸에 화가 참 많이 쌓여있다는 것을 느낀다. 가득한 불만으로 부터 야기된 ‘화’는 ‘불안’으로 나타난다. 불만은 쌓이고 어디에도 풀 곳이 없게된 요즘, 가만히 있는 모든 시간이 불안하다.  그러다보니 최근에는 큰 우울함이 없음에도 공황장애 진단을 받게되기도 했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 후, 참을 수 없는 자괴감과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을 집어던지려는 찰나, 남은 할부기간이 떠올라 속으로 삭혀야했던 가난한 대학생 시절의 내 모습이 지금까지도 사진처럼 남아 가끔 떠올리게 된다.

나 자신을 착하다라고 말하면 비웃을 사람들이 꽤 있겠지만, 아무튼 어느 정도 착했던 나는 참을 수 없는 불안이 찾아올 때에 옆에 있는 더 착한 사람에게 징징거리거나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술도 취할만큼 마시지도 못하고, 물건들을 부수기엔 가난했고, 안아주겠다는 사람 앞에선 양심을 찾았다. 어떻게 보면 생각이 많았고, 어떻게 보면 겁이 많았다.

그런 내게 영화 속 주인공은 퍽이나 부러운 결말을 맞았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고 더 이상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없는 요즈음, 어떻게 이 가득한 불안을 해소할 것인지가 가장 큰 난제인데, 영화는 두 가지의 방법으로 폭력과 섹스가 있다고 얘기한다.

가족은 싸워야 한다. 내게 화를 안겨주는 사람들에겐 같은 폭력으로 맞서야 한다. 가족이기 이전에 우리는 하나의 객체이고,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하다. 지난 십 년 동안 무던히 노력한 탓에 이제 그건 참 잘한다. 순간순간의 고민거리는 되지만 서로에 대한 기대를 많이 져버린 요즘의 우리 가족은 나름 행복하기에 큰 불만이 되진 않는다.

그러나, 사랑은 좀 다르다. 가족은 상처내도 아물기 마련이지만, 사랑은 상처가 나면 도마뱀 꼬리자르듯 남기고 떠나버리곤 했다. 나 혼자 사랑한다고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은 여전히 어렵다. ‘성모 마리아같은 사랑이 필요하다.‘고 했던 지인의 말이 기억난다. 이상하고 서툴러도 안아줄 사랑, 상처나도 놔두고 떠나지 않을 사랑 말이다. 영화 속 히로인 ‘레나’는 그에게 성모마리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