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사자의 얘기는 누구도 필요치 않는다.
숫사자는 강한 가부장의 상징으로 소비되곤 한다. 남성적인 갈기, 강한 육체, 많은 수의 암컷을 거느리는 정력. 암컷이 사냥해온 먹이를 누구보다 먼저 먹는 가부장이며, 자식들에게 엄격한 아버지이다.
최근에는 ‘사냥을 하지 않는 숫사자가 가정에서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과 함께, 암컷에게 무력한 바가지 긁히는 숫사자의 사진이 유머 소재로 나돌거나, 그의 역할에 대한 추측과 증거들이 유행 타듯 흘러다니기는 했지만, 사실 정작 우리는 대부분의 숫사자에 대한 얘기에는 관심이 없다.
일부다처제의 사자사회에서, 대부분의 숫사자는 소외되는게 자연스러운 사실이다.
수 많은 동물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숫사자의 강한 힘과 권력에 관한 다큐멘터리만이 주류 언론에서 지겹도록 반복된 이유는 자본주의의 남성중심 가부장적 권위가 자연적인 현상임을 암암리에 교육하기 위함일 것이다. 약육강식, 동물의 성생활 등은 자본주의 속 경쟁구도와 남성의 사회적 위치를 견고히 하는 데에 숱하게 활용되어 왔다.
동물사회의 일부분만이 집중해서 확대재생산되는 현상에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분명히 염증을 느꼈을 테고, 우리가 ‘자연스럽다.‘라고 생각하는 이면의 동물사회를 보여주려는 시도가 계속해서 이어져 왔던 것 같다. 관련할 다큐를 접할 기회가 잦진 않지만, 우연히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지 못한 숫사자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왕좌에 오르지 못한 대부분의 젊은 숫사자들은 함께 몰려다니며 사냥을 하고, 다른 집단의 암컷을 범하려다 힘이 센 숫사자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상처입어 죽었고, 젊은 숫사자 무리는 한 집단의 수컷 왕이 늙어 기력이 사라질 때를 노려 왕좌를 빼앗기도 했다. 그나마 그건 그들 중에서도 일부의 얘기였고, 주류 수컷이 되지 못한 대부분은 그렇게 떠돌며 약탈하거나 자유(?)로운 삶을 택한다.
주류 미디어는 분명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기 위해 편집하고 곡해한다. 많은 가부장적 남성상이 여전히 드라마에서, 예능에서 보여지듯이 동물의 삶을 다룬 다큐 역시 잔인하거나, 처절하거나, 소외되는 삶의 모습은 편집되어버린 채 필요한 부분만이 전파를 탄다. 모두 그렇지만, 이어 얘기하자면 ‘남성의 슬픔’은 여기서 시작된다. 대부분은 주류 남성이 아니지만, 우리는 소외된 숫사자의 삶을 생각해본 적 없듯, ‘주류가 아닌 남성으로서의 내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우리의 부모가 근대 한국사회의 경기 호황을 등에 업은 탓에 아마 꽤 많은 수는 가정에서조차 권위를 잃은 남성의 모습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렸을 때 겪은 아버지의 자살기도와 부재는 내게는 아르바이트와 같은 경험이었을 수 있다. 남성으로서, 인간으로서 혼자 서기위해, 삶 속에서 자유롭기 위해 내가 선택해야할 대안을 고민케 했다. 당시에는 그리고 꽤 오랫동안은 충격과 슬픔으로 자리잡아왔던게 사실이지만, 실상 대단히 슬픈 일은 아니다. 여전히 아버지와 나는 살아있고, 그는 가난하고 나는 찌질하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흥미롭게 살아가고 있다. 적어도 오늘 얘기 나눈 택시기사님의 가정처럼 퍼주고 받지 못하는 아버지, 받고도 불행한 아들처럼 살고 있지는 않으니까.
언제나 타자들과 함께 내가 행복할 대안을 생각해야 하고, 타자의 욕망을 억압하지 않는 나의 진실된 작은 욕망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웃긴 건, 내가 이 생각을 엄마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한가로운 일요일 낮에 했다는 것이다. 옷을 멋지게 차려입은 젊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각각 아메리카노와 더위사냥을 손에 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이미 포기했던 ‘내 가정’에 대한 꿈을 펌프질 하고 있었다. 동등한 눈높이에서 대화하는 젊은 부자의 모습이 멋져보이더라라고 엄마와 얘기하던 도중 내 눈에 든 것은 앉아있는 아이 아빠의 묵직한 아랫도리였다. 자연스레 나는 떠돌다 죽는 숫사자가 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나는 저렇게 못되겠다.‘라 얘기했고 엄마는 아마 ‘내가 아들과 저렇게 사이좋게 지내지는 못할 것 같다.’ 라고 말한 것으로 이해한 것 같았다.
여전히 비관은 없고, 에피소드만 있을 뿐이다. 혹여라도 이 글을 읽는 이가 같은 고민 속에 있었다면, 눚지 않게 삶의 행복을 위해 대안을 찾기를 시작하기 바란다. 어떻게 들릴진 모르겠지만 꽤나 많은 방황과 절망과 시도와 경험을 거쳐, 요즘에는 ‘이 또한 지나갈’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