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만원짜리 안경을 샀어요.
난 습관처럼 ‘가난’을 떠들고 다닌다. 뭣만 하면 ‘가난해서 그래요.‘라고 하곤 하는데, 그럴때마다 대부분 돌아오는 대답은 ‘다들 그 정도는 힘들어.‘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나의 가난에 대해서 이미 속속들이 알고 있는 듯했다.
모두가 가난한 시대, 가난하다는 것이 체면치레이자 겸손인 시대에 살면서 누군가의 가난하다는 말이 그저 유세로 느껴질 법도 하지만, 나는 정말, 꽤 가난하다.
재산세가 0원이 나오는 가정, 네 가족이 사는 전세 집 하나 구하기 힘들어 서울에 자리한 터전을 버리고 강원도 경기도 경상도 어귀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내일 먹을 밥을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어 모든 걸 그만두고 일을 시작하는 상황. 그것들이 내가 맞이한 가난이었다.
가난을 마치 감정인 마냥 상대적으로 치부하는 시선들은 이럴때 마다 각자 당면한 가난이 있는거라고 하지만, 나는 정말 가난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함께 가난과 어려움을 이야기하다, 어느 순간엔 당연히도 결혼할 집을 부모님 손을 벌려 구했다는 친구와, 일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외제차를 구입한다는 동생과, 새로 나온 차가 예뻐서 다음 달에는 바꿀거라는 형을 만나고 뒤통수를 크게 맞는 기분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주어진 가난을 불평하는 건 아니다. 맞이한 현실이고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고, 그저 주어진 환경일 뿐이며, 어떤 날엔 당면한 과제가 있다는 사실이 심지어 약간 기쁠 때도 있다.
섭섭한건, 누군가가 스스로의 상황이 ‘어떠하다.’ 라고 하는 것에 일말의 궁금함없이 일축하는 보편적인 반응이다. 또한 안타까운 건, 언젠간 다른 반응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반복해서 상대를 피곤하게 하는 내 외로움이다.
어느덧 일을 한지 3년째가 되었고, 인정받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하다보니 어찌저찌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과 나잇대 평균 연봉 - 30대 평균월급이 월 176만원이라는 기사를 얼마전에 보았다. - 보다는 더 받으며 일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평생 쓸 80만원 짜리 안경을 샀다.
나이 서른에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만들었고, 할부라는 걸 받아 보았다. 난 원래 합리적인 소비자라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을 덧붙이고 싶은 마음을 차마 참지 못하고 ‘평생 쓸’ 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이고 말았지만, 이러든 저러든 나는 안경에 80만원을 썼다.
‘너 안경 80만원 짜리잖아!’라는 말은 너무도 강력해서 이젠 더 이상 생활비 까보자며 계좌를 들이밀 수 없게 되었는데, 웃기게도 그 놀림에 외로움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어떤 의미일지, 아직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