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1.

어떤 영화를 보아야겠다고 마음먹는 데에 제목과 포스터가 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영화는 꼭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데에는 제목의 공헌도가 높지만, 제목이 귀에 들리게 된 데에는 SNS와 여타 언론의 역할이 컸다. 몇 년 전부터 정치적 색을 띤 영화들의 상영관 확보에 대한 논란이 쌓여왔고, 이어져 온 관심이 이 영화를 통해 집중되고 있다. ‘배급사 대표 사퇴’ 등의 자극적인 사건들이 적절한 시기와 맞물려 최소한 대중에게는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왔고, 의도한 바는 아닐지라도 이 영화의 마케팅은 그 덕에 조금씩 긍정적인 물살을 타고 있는 것 같다.

2.

그 때문에 늘 먼저 확인하는 포스터를 상영 직전에야 보게 되었다. 처음엔 ‘오 예쁘다.‘라고 반응했지만, 자꾸 보니 아무래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포스터에 영향을 크게 받은 듯 보인다. 김혜자의 얼굴을 중심으로 각 캐릭터의 특징이 크게 강조되어 이 인물들이 만들어낼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배가시킨다. 더불어 환상적인 색상과 연극적인 배우들의 표정이 동화적인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 흥행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부풀려 떠들지 않고 영화의 방향을 적절하게 안내했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3.

영화는 아주 재미있었다. 고전적인 설정과 설득력이 떨어지는 진행에도 불구하고 동화적 상상력과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논리적인 구멍들을 메워주며 개연성에 대한 의구심보다는 웃음과 흥미가 앞서 자리 잡게 된다. 판타지와 현실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둘의 장점을 모두 가져가는 각본이 우리나라에서도 쓰인다는 것에 잠깐 감탄했지만, 역시나 동명의 해외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것이었다.

4.

왜 국산 영화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것일까? 여전히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현실적 무게가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의 생산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나 자신만 하더라도 예쁜 영화의 화면과 천진난만한 동화적 요소에 크게 즐거워하면서도 ‘가난해서 나앉은 피자 차량의 실내가 너무 안락해 보이지 않나?‘라던가, ‘부자가 언제 속내를 드러낼까?‘하는 생각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그 모든 현실적 불안이 영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자기검열로 역할 했더라면 이런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늘 무책임할지도 모르는 환상을 동반한 긍정을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논리로는 해결되기 힘든 상황을 현실에서 자주 맞닥뜨리게 되는 요즈음, 웃게 만드는 환상이야, 얼마든지 괜찮다.

5.

흥행한 원작 소설과, 월리를 포함한 모든 배우의 빛나는 연기, 훌륭한 연출과 깨알 같은 유머까지 흠잡을 데 없이 즐거운 영화다. 다만 엔딩 크레딧과 함께한 쿠키 영상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모든 긍정들이 ‘흥미롭고 즐거운 이야기’로 끝날 수 있었던 기회를 작은 욕심이 망쳐버린 게 아닌가 싶다.

6.

영화를 보고 원작이 어렸을 때 많이 읽은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부류의 소설이 아닐까 짐작했는데, 훨씬 더 진중하고 무거운 이야기라는 것을 씨네21의 리뷰를 통해 보았다. 아무래도 근질근질한 감상이 남는다면 원작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