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들>의 수상에 부쳐
시상식에 다녀와서
2025년 6월 25일,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에서 주최하는 휴먼테크놀로지어워드에서 <깃발들>이 시빅테크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만들었던 서비스가 아닌만큼, 이 상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어느 정도의 마음으로 수상을 대해야하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막상 행사에 참여하고보니 프로그램과 연사 구성의 성실함과 내용의 밀도가 느껴졌고, 보다 진지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겠다고 느꼈다.
1분의 짧은 소감을 발표할 시간은 비교적 작은 상인 우리에게도 공정하게 주어졌고, 정신없이 짧게 소감을 밝히고 몇 장의 사진을 남겼다. 기획하고 데이터를 모으느라 고생이 많으셨던 중원님께 트로피와 꽃다발을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진도 남았고 덕분에 의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어서 충분히 즐거웠다.
처음 수상을 하였을 때 기사를 쓰기위해 각자 <깃발들>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설문을 받았었고, 그때의 글이 퍽 마음에 들었어서 긴 소감으로 남긴다.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있다.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동력이 될 것이다.
2025년 5월 12일 수상 소식을 접하고서
사회적 예술은 종종 역사적 사건과 그로 인한 문화적 현상을 아카이브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형식은 본질적으로 접근성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아, 그 기록이 널리 퍼지지 못하는 일이 잦습니다. 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도구로 웹이 선택되곤 하지만, 웹 역시 플랫폼과 SNS 같은 주류 매체로부터 주목받지 못하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스팸처럼 잊히고 맙니다.
처음 중원 님에게 <깃발들>을 제안받고 단번에 참여하고 싶었던 이유는, 그 기획 속에 이러한 흐름에 대한 해법으로서의 콘텐츠가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2023년 크리스마스에는 각자의 소중한 메시지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방식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웹서비스 <내 트리를 꾸며줘>가 있었습니다. 비록 이번엔 크리스마스처럼 행복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무너져가는 마음을 즐거움으로 다독이고,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보탤 수 있었던 거리의 깃발들 역시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된 메시지처럼 소중히 보관되고, 널리 나누어질만한 자랑거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깃발들>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벌써 천여 개의 깃발이 모였고, 트위터에서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깃발을 자랑하고, 다른 사람의 재치 있는 깃발을 공유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서비스를 방문했고, 감사의 인사를 전해오는 이메일도 받았습니다. IT 산업이 필수 산업이 된 이 시대, 성공한 서비스들의 트래픽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숫자였지만, 제게는 오랜만에 두근거리며 지켜보게 되는 큰 숫자였습니다.
이 서비스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극과 혐오의 콘텐츠를 등에 업고 정치적 도구로 전락해버린 지금의 웹 환경 속에서, <깃발들>은 여전히 개인의 외침과 사랑의 연대가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웹이 돈벌이 수단이 되고, 거대한 플랫폼의 부속품을 만들어야만 개발자로서 생존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지금껏 쌓아온 기술과 경험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웹의 모습이 여전히 재현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성공한 웹서비스에서 기술은 종종 더 큰 영리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만 활용되곤 합니다. 그 또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술은 때때로, 그 시작처럼, 우리 자신과 우리의 환경을 돕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를 필요로 합니다. 휴먼테크놀로지 어워드 수상은 <깃발들>을 통해 제가 그 증거를 손에 쥘 수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기술자로서 무척 행복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