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이 하기 싫었다.
일을 하기가 싫었다.
날씨가 좋고, 주위엔 커피가 맛있는 카페가 많고, 쓰고 싶은 글과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다. 그러나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단순히 일이 하기 싫었고, 그래서 들었던 부정적인 감정이 가라앉은 감정들을 휘휘 저어 떠오르게 했다.
늙은 뽀리는 사람이 없는 집안을 불안한 마음으로 헤집고 다닌다. 눈이 멀어 실수로 똥과 오줌을 밟곤, 온 집안에 흐뜨러 놓는다. 떠나기 몇 년 전부터 세리도 지독히 그랬었다.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아버지는 똥을 치우다 화가 나서 뽀리 머리를 쥐어박았다. 뽀리는 곧 기절했고 깨어나서는 잘 걷지도 못하고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아버지는 그게 재밌다고 기절해서 땅에 퍼질러진 뽀리를 흉내내며 낄낄거렸다.
교회에 과하게 몰입하던 고모는 얼마 전부터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하셨다고 했다. 그녀에게 들은 말 중 가장 기쁜 말이었다. 상담을 통해 추적한 그녀의 삶 속 트라우마의 원흉은 아버지였다고 했다. 5살 때 그녀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쥐가 들끓는 시골집의 골방에 반나절을 가둬 두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도 아버지는 재밌다고 낄낄거렸다.
고모와 아버지가 모인 자리, 이야기의 마지막은 ‘아버지에겐 어떤 상처가 있길래 주위를 그리도 괴롭히는 것일까?’ 였다.
장남이고 공부도 잘했던 아버지는 그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증조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자식 농사를 크게 지으셨던 증조부는 아버지 나이께의 아들들이 많았고, 아빠는 그렇게 삼촌들에게 심한 괴롭힘을 당하셨다 했다. 머리가 깨지고 피가 나도 그렇게 삼촌들은 낄낄거렸다고 한다. 아빠도 그랬구나,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다.
아빠는 고등학교 때 느닷없이 집에 들어와선, 목을 매달았다. 그리고 몇 년 뒤엔 “내가 진짜 죽을라고 그랬는줄 아나?” 라며 낄낄댔다. 늘 낄낄대는 아버지가 괴물같아 보일 때도 있지만, 나를 비추어보아도, 또 기억 속의 아버지를 돌이켜 보아도 그건 멋쩍을 때 할 줄 아는 유일한 아버지의 반작용임을 안다.
부모도 어렸다. 부모도 상처가 많았다. 나는 이미 그들 또한 어쩔 수 없었음을 안다. 내게 가장 큰 트라우마의 원흉이었던 어머니의 폭력도 수도 없이 이해해 왔었다. 어머니가 받았던 사랑, 어머니가 감당할 수 없었던 스트레스들, 때리고 윽박지르면서도 미안한 마음으로 자는 아들의 다리를 주무르던 마음들, 그런 것들을 이해하다 보면 웃기게도 어머니에 대한 동정심만이 마음에 자리잡는다. 내가 지금 어떻든 나는 어머니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어머니가 그런데 아버지야, 쉽게 귀여워질 수 있다.
그러나 가끔, 나는 정말 많이 외롭다. 내가 그들을 이해하는 것과 하등 관계없이 나는 이미 비뚤어졌고, 세상은 더욱 각박해졌다. 그 누구도 나를 소중히 여겨주지 않는 삶에서, 나는 나 스스로 소중한 존재이길 증명하려고 발버둥친다.
물론 쉽지 않다. 나도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다는 걸 안다. 가까운 친구에게 하소연해 보더라도, 그 정도 외로움이야, 다들 감당하고 산다며 너스레를 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