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교예술실험센터의 변모
2013년이었나? 마포구청의 새로운 정책수립에 따른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존폐를 놓고 예술인들의 대국민 호소가 있었다. 나는 당시에 생계를 위해 취직을 한 상태였고,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의 움직임에 냉소적인 판단을 하고 있었다. 생계와 크게 관련 없는 일들에 에너지를 쏟는 모습에 나와는 결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1년여 만에 다시 서교예술실험센터를 찾았고, 크게 놀랐다.
원래 전시나 세미나 용도로 이용되던 서교예술실험센터의 1층 공간이 열린 카페로 운영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카페의 시설물들을 이용하고, 무료로 마련된 차나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상주하는 관리자는 없고, 음료를 마신 사람들은 떠날 때에 사용한 컵을 씻고 가기만 하면 된다.
지방인 고향을 떠나 집값이 비싼 서울에서 생활하는 나는, 매번 짧은 주기로 이사를 하면서 지역 공동체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바로 옆 건물에 나와 비슷한 나이의 또래들이 사는데, 친구 하나 없이 외로워하는 순간이 있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지역을 기반으로 사람들이 자연스레 만나거나 서로 익숙해질 수 있는 공간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유년기에는 놀이터, 노년기에는 노인정, 청소년 시기에는 학교가 그런 공간들을 대체해주었지만, 타지에서 일하고, 또 거기서 멀리 떨어진 싼 월세방을 전전긍긍하는 2~30대 사회 초년생들에게는 그럴 공간이 존재치 않는다. 클럽이나 음주문화가 그 빈 공간을 대신하기도 하지만, 나처럼 술을 전혀 마시지 않거나 어느정도 내향적인 사람은 동네의 적당한 카페를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얼마 전 두산에서 들은 강연에서 박해천 씨가 말했듯 요즘 그 역할을 카페가 대신하고 있지만, 저임금과 월세에 허덕이는 이들 세대에게 밥값에 달하는 카페의 커피값도 문제거니와, 각자 상업적 거래라는 목적이 존재하는 카페에서 자연스러운 공동체의 형성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런 목적 없이, 온종일 죽치고 앉아 빈둥거릴 수 있는, 그래서 자연스러울 수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했다.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이러한 변모는 이런 필요에 의한 움직임이었을 테지만, 어느 정도 재정적인 부담을 덜고자 한 시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공간이 좀 더 접근성이 좋은 위치에 있고, 좀 더 맛있는 커피가 준비되어 있다면 많은 사람이 찾아 자연스럽게 지역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게시판 등을 활성화 시켜 서로 필요로 하는 재능과 재화들의 교환과 동호회 활동들이 활성화된다면 회사 업무 외의 많은 시간을 사람들 속에서 보다 따듯하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 역할은 예술실험센터의 역할은 아니다. 당연한 이 움직임이 ‘예술실험센터’라는 이름의 공간에서 시도된다는 것은?슬픈 일이다. 이 역할은 국가의 역할이며, 공간을 마련하는 것과 무료 음료를 제공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술공간지원기금이 대폭으로 줄어든 이 마당에 쥐꼬리만큼의 지원금을 받는 이 자그마한 공간도 그걸 시도하고 있는 판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