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뽀리
2015년 7월 17일에 뽀리가 떠났다.
하루 종일 가족이 집을 비운 날 이후 스트레스가 컸는지 몸의 전반적인 기능에 문제가 생겼고, 이주일 정도를 크게 힘들어 했다. 허공을 보며 다 쉰 목소리로 앙앙 짖던 뽀리를 뒤로 출근했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울먹이는 누나 목소리로 뽀리가 막 떠났다고, 전화를 받았다.
회의실에 들어가 잠깐 울곤, 습관으로 자리잡은 지나친 처세 덕에 곧 웃고 있었고, 사람들에게 강아지 떠나보내고 왜 아무렇지 않냐는 얘기를 몇번 들었다.
벌써 네 달 정도가 지났다. 글을 쓰다보니 다시 울컥해졌지만, 그리 견디기 힘든 일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함께 자란 세리와의 이별이 먼저 있었기에 오래 전부터 마음이 준비해온 일이었다. 그러나, 세리가 처음왔던 10살 남짓한 나이 이후, 그러니까 20년만에 우리집에 강아지가 없는 것이 처음인 것은 참 생소하다.
자취방에 누워있으면 뽀리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고작 몇 달이 지났을 뿐인데 나도 참 무심하다 싶었다. 그러나 서울 본가에 들르자, 3층으로 올라가는 한 계단 한 계단 다시 생각났다.
없는 걸 알면서도 몸이 습관을 따랐다.
몰래 올라가서 기다려 지친 녀석 놀래켜 주려 계단 위 발소리를 줄였다. 뛰어나와 짖을까 현관문 비밀번호를 최대한 빨리 눌렀다. 눈이 안보이는 녀석을 발로 칠까봐 집안에서 조심스레 걸었다.
그렇게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다 ‘아, 뽀리가 없지.’ 하는 순간 온 몸에 가득 차있던 긴장이 탁 하고 풀리는 걸 느꼈다. 그제서야 습관이 모든 걸 기억하고 있음에 놀랐다.
언젠가 개를 키우는 사람은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늙고 작은 생명체와 함께 산다는 것은 의외로 힘든 일이었구나 싶었다. 오랜만에, 어쩌면 처음으로 거실 바닥에서 늘어져 잤다.
집안에서 선뜻 ‘고기’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 못했다. 엄마한테 고기먹으러 가자고 말하려다 멈칫하는 바람에 엄마도 나도 씁쓸하게 웃었다.
세리는 늘 컴퓨터하는 무릎에 앉아있는 걸 좋아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여기 쿵 저기 쿵 박으며 찾아와선 올려달라고 발끝으로 내 정강이를 긁었다. 한 번 올려다 주면 몇시간이고 코를 박고 자다 문득 화장실이 가고싶다고 느끼는 것 같으면, 어떻게 또 내가 그걸 알아채고 데려다 주곤 했다.
뽀리도 열두세살 즈음에 눈이 멀었다. 아마도 우리가 주는 음식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둘 다 똑같이 포도상구균에 감염되면서 그리되었다.
세리와 달리 사람한테 안겨있는걸 별로 안좋아하는 뽀리는 언제나 적정 거리를 유지했는데, 눈이 먼 뽀리는 납치(?)하기가 편했고, 심심할 때면 찾아가서 온몸을 문질렀다. ‘나 여기 있다~’ 하고 문지르면 뽀리는 기분이 좋다고 내 손을 물려 들었다. 하루 종일 누워있던 뽀리 몸에선 콤콤한 냄새가 났다.
다 늙어버린 우리가족,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기에 아마도 우리집의 마지막 강아지가 될 뽀리를 위해, 이번에는 화장을 하기로 했다.
퇴근하고 주말에 서울 집에 들르니, 작은 함 속에 믿기 힘들만큼 적은 양의 가루가 바닥에 깔려있었다.
언제 한 번 바다에 뿌려주자, 가족끼리 다짐을 했었는데 아직도 집에 고이 있다. 이미 떠났는데 떠나보내기가 쉽지 않다. 우리 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