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약속> 좀처럼 만나기 힘든 인간애의 현장

영상작업을 하던 당시 중앙대에서 연극영화과를 전공하고 영화를 제작하는 형을 만나서 얘기한 적이 있다. 자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때 느꼈던 것은 생각보다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은 스토리텔러라기보다는 테크니션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약속> 은 그런 테크니션들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지배하는 분위기와 정반대되는 대사나 인물의 행동으로 자아내는 유머라던지, 복선의 형태와 캐릭터들을 규정짓는 그들의 습관 등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물론 이 방식은 기분좋게 익숙한 느낌은 아니다. 뻔하거나 오글거리기도 하고, 억지스럽거나 지루하기도 하다. 그러나 <또 하나의 약속>에서 이런 구성을 차용해 온 것- ‘차용’한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 은 테크니션이기에 가능했던 성공적인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신문 기사 제목이나 훑어보는 우리에게 사건의 디테일을 보여주려는 것이 영화의 목적이라면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는 것이 제작진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보편적인 한국관객의 성향을 분석한 결과였을 것이고, 한국 영화의 클리셰에 거부감이 큰 나같은 관객에게도 심각한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예민하게 ‘사건’을 해치지 않는 선을 지켰다.

솔직히 이 영화는 사건의 무게가 워낙에 강한 탓에 영화에 대한 감상을 얘기하기가 쉽지는 않다. 상영관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던가,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삼성 반도체노동자들의 투쟁들은 여전히 실재하는 권력과 연관되어 있기에 <변호인>을 ‘좋은 영화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배경과는 확실히 다른 상황에 놓여있다.

이 영화를 좋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영화의 밖에 놓여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지금같은 시기에 이 영화가 개봉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을 고취시켜주는 기적에 가깝다. 아마 대부분 팟캐스트나 인터넷 언론등을 통해 이미 이 영화의 제작과정에 얼마나 많은 따듯한 연대가 있었는지를 들은 바가 있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크래딧을 가득 메우는 후원단체와 제작두레 명단은 그 어떤 영화에서도 느끼지 못한 감상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예술에 대한 개인적인 기대와 희망이기도 했고, 좀처럼 느끼기 힘든 인간애에 대한 감동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