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자> 상상 속의 희망을 은유한 드라마
올레마켓 웹툰 김보통작가의 <아만자> 에 대한 감상입니다. 기나긴 서두때문에 놀라지 마세요. 이 글은 분명히 <아만자>에 대한 감상입니다.
돌이켜보자면 나는 원래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인형보다는 손톱깎이나 젓가락들로 인형놀이를 했고, 유치원에서는 친구들이 뛰어노는 점심시간에 혼자 교실에서 편지를 주구장창 쓰곤 했다. 그러나 10대를 지나오면서 물리적 폭력과 불행 앞에 상상의 세계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는다는 것을 느낀 후,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IMF라는 범서민적 위기를 거쳐온 모든 세대의 경향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그동안 소설이나 동화에 대해 냉소적이었다. Fiction은 나와 하등 관계없는 세계였다. 영화나 만화를 꾸준히 봐 오긴했지만 비교적 실재했던 사건을 기반으로하거나, 혹은 실재하는 것에 대한 은유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만을 즐겨보았다. 내 삶과 하등 관계없는 판타지나 동화,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소재에 매몰된 추리소설들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또 동시에 UFO나 스페이스판타지같은 완전히 동떨어진 판타지에는 열광하기도 했던 걸 보면, 처음의 성향을 결코 지우지는 못했던 것 같다.
따지고보면 특정 장르의 예술에 대해 ‘냉소적’이라는 것엔 뭔가 큰 비약이 있다. 장르에는 수 많은 카테고리가 있고, 또 각 카테고리에는 수 많은 작품들이 있기 마련인데, ‘작품’이라는 결과물에 냉소한다는건 어불성설이다. 아마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거나 소비하는 ‘어떤 사람들’에 대한 냉소였을 것이며, 타자에 대한 비난은 나의 못난 부분으로부터 야기되기 마련이다. 분명히 혼자 상상에 빠져있던, 그래서 다른 것들을 쉽게 외면했던, 어렸을 때부터 오래간 내 안에 자리잡은 채 현실의 행복과 간극을 만들어오던 스스로의 외곬수적 성향에 대한 비난의 결과였다.
결과가 어쨌든 간에, 그럼에도 계속해서 오직 현실적인 문제들만에 천착할 수 밖에 없다. 눈 앞엔 문제들이 놓여있고, 뭔가 이것만 집중하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현실’과 ‘삶’에 대해 아무리 고민한다고 해도, 현실의 문제들은 쉬이 해결되지 않는다. 고민에 그치지않고 부딪히고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외곬수적 성향의 역치에 다다른 이후에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밖에 남지 않는다. ‘돌아가는 것’ 말이다.
삶은 어차피 이어지고, 소소한 행복, 별것 아니지만 즐거워했던 그것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니, 다짐에 앞서 이미 내 몸과 마음이 그러하고 있었다.
개인적인 연유를 떠나서도, 관객의 유치를 위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경향 - 특정 사건의 폭력적인 면을 과하게 사실적으로 강조하거나, 혹은 기술의 발달로 스펙타클만을 생산하는 - 때문이라도, 소소한 삶의 이야기나 아기자기한 동화적 재미에 목말라 왔던 것 같다.
최근 그녀와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의 흥행을 보아도 많은 관객들이 멀티플렉스를 떠나 시네마테크를 찾고 있고, 블록버스터 영화의 정형화된 내러티브에 질린 관객이 적지않음을 알 수 있다.
만화는 비교적 영화에 비해서 장르의 다양함이 잘 지켜지긴 했지만, 국내 웹 시장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네이버 웹툰의 프레임에 의해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되는 경향의 만화가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만화시장에 풍부히 포진한 ‘덕후’들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관계로 레진코믹스 등의 후발주자들이 성공을 거두고 있고, 레진코믹스의 웹툰들은 문화예술의 지배적인 경향을 떠나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소중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레진코믹스에는 현실적인 삶을 다루는 너무나 좋은 만화들도 많지만, <아만자>에 대해 얘기하기에 앞서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은 레진코믹스의 <수염과 멜빵>이라는 만화이다. <수염과 멜빵>은 동화적 재미를 다시금 깨닫게 한 만화이다. 상상으로 가득한 아기자기한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현실에서는 충족할 수 없는 감정을 충만하게 해주는 느낌이 있다. 현실과 많이 동떨어진 이야기라 하더라도 어떤 면에서 소중하고 필요한 것인지 돌이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뭔가 조~금 찝찝하다. 왕족이라는 인물들의 설정과 별 것 하는 것 없이 삶을 향유하고 있는 캐릭터들에 나는 점점 꼬장꼬장해 진다. 물론 모두다 훌륭하고 소중하지만 무언가 어느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올레마켓에서 김보통 작가가 연재중인 <아만자>의 독특한 전개 방식은 이런 현실적인 삶과 상상의 세계를 묘하게 뒤섞는다. 암환자인 주인공의 현실적 고통에 대한 민감한 감정묘사와 더불어, 결코 ‘사실적’이어서는 설명할 수 없는 개인의 내적갈등과 자기객관화를 동화라는 형식을 빌어 담담하게, 또 유머러스하게 은유한다.
처음엔 마치 다른 만화인냥 당혹스러운 세계의 전환이 뒤로 갈 수록 설득력을 갖추어간다. 주인공이 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에 나타나는 현실세계와 의식을 잃을 때에 나타나는 상상의 세계가 서로 깜빡이며 교차되는 전개방식은 비교적 영화나 소설에서는 자주 등장했던 것도 같지만 만화에서 어색하지 않게 만난건 처음이다. 이 덕분에 <아만자>는 픽션과 논픽션의 두 가지 즐거움을 모두 충족시킨다.
이 구성으로 얻는 것은 비단 만화적 즐거움 뿐만 아니다. <아만자>의 독특한 구성은 질병이 주는 육체적 고통, 그리고 결코 타자들과 공유할 수 없는 아픔이 주는 고독감 속에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삶을 이어나가고 싶은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섬세하고 풍부하게 보여준다.

<아만자>는 현재진행 중이며 풀어나가야할 이야기는 아직 많지만 ‘고독한 개인의 삶에 대한 의지와 상상 속의 희망을 은유한 드라마’ 라고 얘기할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작가가 트위터에서 이 이야기는 엄청나게 해피엔딩일 것이라고 누누히 얘기한 바, 주인공의 이 희망이 어떻게 현실로 이루어질 지 흥미롭게 지켜보기만 하면된다. 그리고 더불어 그 속에서 내 삶의 갈피를 잡을 용기를 얻을 수 있지는 않을지, 슬쩍 기대를 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