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Time> 시련없는 교훈의 무의미함
나는 멜로 알러지가 있다.
딱히 멜로 영화를 싫어한다기 보다는 현재의 불만족에서 오는 피해의식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친구가 당당하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두번씩은 보았을 것이라던 <Love Actually>를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Love Actually> 의 감독 리처드 커티스의 신작 About Time을 보았다.
지난 번, 영화 마스터에 대한 감상을 적으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영화는 기껏해야 두세시간의 짧은 시간 안에 서사를 담아내야하며, 꽤나 큰 자본의 영향을 받는 장르라는 것을 인지하자는 것인데, ‘좋은 영화 한편 보면서 너무 까탈스러워 하지 않나.’ 하는 자기반성의 결과였다.
되도록 영화의 핵심이 되는 메세지 하나에 집중하여 긍정해보자. 즐겨보자. 라는 취지였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도 실패한 것 같다.
‘실패했다.’ 라는 것이 영화가 재미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중들의 높은 평점에 걸맞게 <About Time>은 상당히 재밌는 오락영화다.
<Love Actually>같은 멜로 영화를 기대했다면 전혀 다른 영화를 만날 것이다. <About Time>의 초반은 뜬금없음의 반복이고, 뜬금없는 설정에서 시작한 귀여운 상상력들은 꽤 오랜시간동안 흥미로운 유머로 작용한다.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풍경, 우연히 일어나는 로멘틱한 사건들, 크레딧 엔딩동안에도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음악까지. 더욱이 이 영화는 멜로가 아니다. (만세!)
그러나 실망스러운 후반의 내용전개와 <시간에 대하여>라는 제목에 못미치는 허술한 결말로 뒷맛이 쓰게 남는다.
영화에 대한 가벼운 감상들을 찾아보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라는 교훈을 준다는 것이 많다. 심지어 요즈음에는 이 영화의 홍보를 그런 방향으로 하기로 자리잡은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도대체 이 영화의 어떤 부분이 그런 감상의 원인이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 스포주의
이 영화의 주된 소재인 ‘시간 여행’과 결말에는 설득력있는 인과관계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똑같은 하루를 다시 한번 살아보는 경험과 시간여행으로 어찌할 수 없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것인데, 그것마저도 임종을 맞은 아버지를 몇번이나 다시 만나보는 등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간절할 기회를 ‘시간 여행’으로 얻게 된다.
앞으로 뒤로 따져보아도 주인공이 평범한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만한 이유는 주어지지 않은 채 영화는 갑자기 ‘평범한 시간은 소중해.‘라는 결말에 도착해 버린다.
<About Time>이 관객에게 주고자 했던 메세지가 ‘소박한 삶의 소중함.‘이었다면 결말까지 가는 과정에서 그렇까지 소홀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저 오락영화의 마지막에 관객들이 쥐고갈 ‘의미처럼 보이는 건더기 하나’를 던져준 것 뿐이라 느껴진다.
모든 삶의 교훈은 경험과 충돌이라는 크고 작은 시련과 그 극복에서 오는 것일테다. 그러나 영화 속 ‘시간 여행’은 부러울만치 그 시련들을 훌륭하게 극복할 수 있는 여유와 기회를 제공하는 수단이었다.
어쩌면 영화의 마지막에 남는 찝찝함, 불만족 스러운 감정은 그런 기회를 가졌던 주인공에 대한 시기심일지도 모르겠다.